같은 교복을 입고, 머리를 높게 올려 묶은 모습이 익숙한 시절도 있었는데. 아침마다 머리끝을 구불구불하게 말아내는 것은 아침 시간이 여유로운 대학생의 특권이다. 꼬박꼬박 챙겨 입으면서도 내심 마음에 들지 않았던 교복은 옷장 한켠에 걸고 잊은 지 오래다. 둥그런 퍼프소매나 리본은 멀리 밀어 두고, 손 닿는 곳에 가득 걸린 부드러운 직선으로 떨어지는 옷을 꺼냈다.
오늘따라 길에서 마주치는 동그랗고 주름진 교복들이 귀여워 보이는 것도 같다. 고등학생 땐 혼자 불쑥 튀는 게 싫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커다란 키도, 지금은 뭘 입어도 한층 어른스럽게 보이게 해 주어서 좋다. 게다가 오늘은 조금 어른스럽게 보여도 좋은 날이니까. 익숙하고 그리운 장소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영원히 변하지 않을 줄 알았던 것들이 고작 몇 년 사이에 쉽게 바뀐다 싶다. 취향이라든가, 인연이라든가.
꽃다발을 들고 다시 선 교정은 한점 변함이 없다. 3년이라는 시간을 되풀이하는 학교에서 몇 번이고 반복되는 졸업식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원망스러울 정도로 가볍고도 시원하게 떠나는 사람을 지켜보던 졸업식, 어디에도 꺼내놓지 못한 조급함을 엿보았던 졸업식, 그리고 순수하게 축하만을 안겨줄 수 있는 오늘의 졸업식까지. 이제 북산고교에는 그가 과거의 졸업생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줄 사람이 몇 남지 않았다. 설령 안다고 해도 혼자만의 생각에 빠졌을 때 짓는 특유의 무표정을 보고 쉽게 다가올 후배는 없었을 것이다. 제 취향에 맞춘 꽃다발 끝을 만지작거리며 누군가가 생각에서 꺼내줄 때를 기다렸다.
한편, 오늘의 졸업생은 동료들의 축하를 받기에 여념이 없었다. 더 이룰 꿈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리 떠나는 게 아쉬운 것인지. 거칠지만 애정 가득한 축하에서 빠져나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졸업이라는 시원섭섭한 감정을 만끽하려던 찰나에- 반가운 뒷모습을 발견한다. 선배! 묘한 긴장감에 졸업장을 꾹 쥐었고, 상대방은 뒤를 돌아보았고. 서로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졸업 축하해.


치즈 님, 미소녀 님 커미션
딱히... 별 거 아니야.
別に、何でもない。
서명은 徐 銘誾 (새길 명, 온화할 은)
(日) 후지와라 시즈쿠 藤原 穏空 (편안할 온, 빌 공)
등허리까지 오는 길이의 검은 곱슬머리. 왼쪽보다 오른쪽 옆머리가 더 짧다. 눈매는 처진 편이지만 눈꼬리가 올라간 탓에 마냥 순한 인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코트, 재킷, 셔츠처럼 주로 입는 포멀한 옷에 무얼 생각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이 더해져 어려운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전반적으로 흐릿한 분위기의 사람. 스스로 입술점이 포인트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이: 만 22세 *슬램덩크 작중 시점 기준. 준호 3학년-명은 대학교 2학년
키: 170cm
생일: 2월 9일 (물병자리)
혈액형: AB
좋아하는 것: 멍 때리기, (입는) 코트, 라멘
싫어하는 것: 불확실한 것, 미술 수업(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는 행위 전반), 차슈 없는 라멘
가족관계: 부모님, 두 살 어린 남동생.
출신지/학교: 가나가와현 토박이. 신라중학교, 북산고등학교를 거쳐 현재는 도쿄 소재의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 원작 시점 기준으로 생명공학부 2학년 재학 중. 학기 중에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다가, 방학이 되면 본가에 내려온다. 짬이 나면 주말을 빌려서 잠시 내려왔다 돌아가기도 한다.
성격: [키워드: 조용한, 참을성 많은, 눈치 없는, 무심한, 덤덤한, 엉뚱한, 자기 세계.]
- 한눈에 봐도 활발하고 잘 들뜨는 인상은 아니다. 너무 조용해서 무서웠는데, 친해지고 보니 그렇지 않다는 식의 첫인상 감상을 자주 듣는다. 자기 세계가 워낙 확고한 탓에 상대방에게 좀 무심하다. 집에서도 살가운 딸은 못 된다.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데에 재주가 있어 가끔은 하도 소리 없이 돌아다녀 가족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고.
- 말을 안 해도 너무 안 한다. 친하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필요 이상의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을 할 줄 모르는 게 아니라, 그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그렇다. 한마디로 사회성이 부족하다. 망상에 빠지는 버릇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무표정이 되어버려 모르는 사람들은 괜히 명은의 눈치를 보곤 한다. 본인이 다가가기 어려운 표정을 짓고 있는 줄도 몰라 이런 버릇이 익숙한 친구들이 잡아주고 나서야 알아차린다. 내향적일 뿐 소심한 게 아니기 때문에 앞에 열심히 말을 붙여오는 사람이 있으면 곧잘 대화한다.
- 무슨 생각하세요? / 아무것도...
항상 생각에 잠겨 있으니 대체 무슨 상상을 하는 건지 궁금할 법도 하다. 하지만 본인에게 물어보면 항상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실제로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쳐들어온 외계인의 침공을 걱정하는 부류는 아니고, 저녁 메뉴의 영양 균형 내지는 고전하던 문제의 풀이법 등을 고민하는 식이다.
- 동급생 사이에서 별난 아이 취급을 받는다면 후배들의 입장에서는 친해지기 어려운 선배다. 딱딱한 성격도 아니고 인상이 차갑지도 않은데 왜 친해지기 어려울까, 하는 생각이 드는 선배. 하지만 얼굴을 오래 비춘 방송부 안에서만큼은 은근히 팬이 많다. 격식 차리지 않고 제 일만 묵묵하게 해내는 덕분에 성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니컬한 성격으로 멋대로 해석해서 좋아하는 학생들도 있다.
- 매사에 다 덤덤하다. 사실은 나름대로 감정 동요도 있고 놀랄 때도 있는데 표정 변화가 적고 항상 침착한 탓에 남들이 잘 모른다. 이를테면 긴장했을 때 겉으로 보면 멀쩡하지만 손을 대보면 심장이 엄청 뛰고 있는 식. 그런데 또 말은 오, 긴장했나 봐. (그러나 표정 변화가 없다) 같은 식으로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 게 포인트.
기타
1)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라멘. 지구가 멸망하기 전에 먹을 음식도 라멘. 음식에 대해 이상한 고집이 있다. 취향이 아주 확고해서 꼭 차슈가 들어간 돈코츠 라멘에 시치미를 뿌려 먹는다. 은근히 대식가. 가리는 음식은 없음.
2) 좋아하는 옷 종류는 코트, 니트류, 가디건, 바지... 구두는 걷는 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높이만. 워낙 키가 커서 플랫슈즈 정도로 충분하다. 프릴이나 리본처럼 화려한 장식을 좋아하지 않는 대신, 귀걸이로 포인트를 주는 편이다. 자주 하고 다니는 것은 링귀걸이.
3) 미적 감각이랄 게 없다. 본인도 알고 있지만 억울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가뜩이나 눈치도 없는데 센스까지 없는 타입. 남자로 태어났으면 최악... (다행이다)
특이사항
북산고에 다니던 시절, 마음에 둔 선배가 있었다. A선배를 따라 방송부에 가입하고 일을 도맡아 하다 보니 A는 명은에게 부장 자리까지 넘겨주었다. 선배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A의 졸업식 날, '너처럼 책임감 있는 후배가 있어서 안심이다'라고 말하며 후련하게 미소 짓는 그를 보고 명은은 자신에게 부활동이 아무 의미도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단추를 받으려던 생각은 접었다. 집에 돌아오고 나서 그 결정을 약간 후회했다. 짧았던 동경 내지는 첫사랑을 마무리하기 위해 끝까지 책임감 있는 후배로 남겠노라 마음먹었다. 사명감은 없어도 책임감 하나는 있는 방송부 부장. 덕분에 원서를 쓸 때 공대에 지망하겠다는 명은을 보고 모두가 놀랐다.
준호와의 관계
"아, 안 그래도 언제 오시나 했어요."
깜빡 두고 가신 줄 알았거든요. 이제 곧 문을 잠글 거라서...
명은은 대답 없이 체육관 내부를 둘러본다. 깨끗하게 닦인 농구공, 신발이 비쳐 보일 것 같은 코트, 그리고 그것들을 등진 채 테이프를 내미는 두 손. 코트 구석에 덩그러니 놓인 삼각대를 가리키자 앳된 얼굴의 남학생이 멋쩍게 웃었다. 다른 부원들은 모두 돌아갔는지 체육관이 조용했다.
참 이상한 티셔츠를 입었네.
명은이 준호의 얼굴보다도 먼저 기억한 것은 허술한 디자인을 한 그의 티셔츠였다.
둘은 체육관에서 처음 만났다. 방송부에서는 다른 동아리에게 촬영 장비를 빌려주는 일을 했는데, 명은이 교내를 돌아다니며 직접 장비를 회수하다가 연습 후 뒷정리를 도맡은 신입생 준호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렇게 만나는 날이 늘자 준호가 테이프 바구니를 부실까지 들어주거나, 명은이 체육관 뒷정리를 돕거나 하며 대화를 텄다. 시간이 맞으면 둘의 귀가 방향이 엇갈리는 교차로까지 같이 하교하기도 했다. 깜빡이는 신호등 아래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나중에 경기 보러 오세요. 무척 좋은 팀이 될 거예요."
"뭐... 그래요."
그때부터 종종 북산고의 농구 경기를 보러 가게 되었다. 잠깐 짬을 내서 자리를 지키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았다. 원래부터 농구나 고교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었기에 성적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사실 지켜보는 데에 의의를 뒀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항상 조용히 경기를 보러 왔다가 가곤 했다. 시간이 흘러 명은의 졸업식 날, 선배가 떠나기 전까지 멋진 경기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아쉬워하는 준호의 표정이 명은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조바심과 아쉬움이 섞인 그 표정은 처음 보여주고 처음 보는 것이었다.
졸업한 이후로는 대학을 다니느라 주로 도쿄에서 지냈기 때문에 경기를 보러 가기 어려웠고 연락할 일도 많지 않았다. 간간히 본가에 있을 때 전화로 일상 보고를 주고받는 정도. 그러다가 명은이 대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오랜만에 걸었던 안부 전화에서 둘의 관계가 바뀔만한 대화가 오간다. 다시 경기 보러 와주세요. 그때 말했던 거 지키고 싶어요. 이번엔 정말로요. 전화기 너머로 설렘을 꾹 누른 듯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그래? 기대할게... 항상 그렇듯 자리를 지켜주는 것 정도는 명은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코트에서 다시 만난 준호를 보며 명은이 처음으로 건넨 말은 멋있어졌네, 였다.
방송부 부장 서명은은 학창 시절을 생각하면 항상 아쉬움이 있었다. 부활동을 고교 생활의 꽃이라고도 부른다는데, 정작 자신은 남에게 줄 꽃이나 키우다가 그마저도 주지 못하고 졸업했다. 좋아하는 일이 있고, 결과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는 준호의 모습에 동경 내지는 호감과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된다. 보답받는 사랑을 하는 사람은 저렇게 행복해 보이는구나.
준호는 어떤가 하면, 선배에게 어른스럽게 보이고 싶다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모든 후배가 그렇듯 -자의로 한 일은 아니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선배는 멋있어 보이니 그런 선배에게 자신의 멋진 모습 또한 보여주고 싶었다. 저 선배와 길게 대화해보고 싶다, 웃는 게 보고 싶은데, 나 때문에 기뻐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서로에게 감정이 스며든다.
처음에는 서로를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라멘 애호가와 티셔츠 애호가. 약간은 비밀스러운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는 것이 즐거웠다. 무뚝뚝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던 명은은 의외로 잘 웃고, 장난스럽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할 줄 안다. 그런 명은 앞에서는 모범이 되는 선배니 최고참 부주장이니 하는 것들을 잊고 편한 태도로 있을 수 있었다. 명은 또한 준호를 언제까지고 그가 신입생인 것처럼 대했다. 처음에는 그런 대우가 영 낯간지러웠으나 자신을 그렇게 대해줄 사람이 주변에 몇 없다는 걸 깨닫고 이내 적응하고 만다.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조바심 내는 부분이야말로 어려 보인다는 걸 깨닫게 되는 건 몇 년 후의 일이다.
다른 인물과의 관계
같이 학교를 다닌 게 3학년 부원들 뿐이라 예전에는 아는 것도 그 세 명이다. 치수와 대만의 얼굴은 익혔지만 그래봤자 길게 대화한 적은 없다. 준호가 중간에서 소개해준 적이 있어 이런 친구들이구나, 하고 아는 정도. 1학년 때 준호와 명은이 이야기 나누는 것을 본 치수와 대만은 언제 3학년 선배랑 친해졌는지 놀랐다고 한다. 나중에 준호를 찾으러 온 명은이 허탕 치는 날에는 먼저 갔다며 준호의 소식을 알려주기도 했다.
오히려 농구부 선수보다는 그 주변 인물들과 더 친하다. (연재 시점 이전에는) 꾸준히 보러 오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에 명은과 소연은 얼굴을 금방 텄다. 남동생뿐이라 동생과 비슷한 터울의 소연을 여동생처럼 꽤 귀여워한다. 소연도 그런 대우가 싫지 않은지 명은을 잘 따랐다. 명은이 대학교에 간 이후 얼굴을 자주 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아쉬워한다. 한나, 태웅과도 같은 신라중학교 출신이지만, 학교에 다닌 기간이 겹치지 않아 그때부터 알던 사이는 아니다. 한나와는 같은 중학교 출신인 것을 알고 쌍방 반가움을 느끼고 있다.
이러나저러나 준호를 제외하고 나머지 인물들과의 관계가 깊은 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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