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ling you, Darling you
카테고리
작성일
2023. 8. 22. 13:14
작성자
Clockwork1overs

imnotsonwman 님 커미션


트렌치 코트를 입은 여인은 교차로의 보행자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자를 그리는 눈썹과 입술, 배 앞으로 가지런히 모아진 손.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보다는 훨씬 키가 크지만 위압감을 주는 체격은 아니었다. 굽이 없는 신발을 신었다. 코트나 가방은 마감이 깔끔하고 그럴듯한 디자인이었으나 누가 봐도 알만한 명품 브랜드의 것은 아니었다. 평범하고 단정한 직장인의 모습이었다. 그런 여인에게서 유일하게 눈길을 보낼만한 부분은 바른 자세와 곧은 시선-먼 곳을 향해 뻗은-이었지만 모두가 지친 역 앞의 교차로에서 그런 사소한 것에 관심을 가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하프 갤런은 여섯 개까지 -

무얼 생각하는 건지 알 수 없는 눈이 어느 한 지점에 초점을 맞춘다.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뀌기 직전, 교차로 건너에 있는 건물의 불이 툭 꺼졌다. 건물에 통째로 들어선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가 영업을 끝내려는 모양이었다. 여인은 그 모습을 보며 어딘가에 들어가야겠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목이 마르거나 카페에 들어가려는 생각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일절 없었으나, 그 소등消燈이 신호라도 되는 양 집이 아닌 다른 장소로 들어가고 싶어졌다. 타이밍 좋게 신호등의 색이 바뀐다.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 가장 큰 사이즈는 여섯가지 맛을 고르실 수 있어요. 맛보기도 가능하답니다. 이쪽은 기간 한정 메뉴인데-
- 그냥, 여기부터... 저기까지 주세요.

술집을 제외한 대부분의 가게가 영업을 끝냈으나, 아이스크림 가게만이 거리의 등대마냥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이 가게도 곧 마감을 하려는 건지 매장이 깨끗했다. 깨끗하게 닦인 유리창 너머로 아이스크림 통이 보기 좋게 늘어져 있었다. 여인은 그 모습이 퍼즐게임 같다고 생각한다. 가장 인기있는 맛은 계산대와 가까운 칸에 모여 있었고, 나머지 아이스크림은 색깔별로 깔끔하게 분류되어 있었다. 점원의 친절한 설명이 무색하게 이달의 맛이니, 베스트 셀러니 하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빨간색과 분홍색-그저 그것이 여인의 몸과 가장 가까웠기 때문에- 아이스크림이 모인 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선을 죽 긋는듯한 모양새에 행주를 든 직원이 움찔했지만, 손가락이 유리의 표면까지 닿지 않는 것을 보며 안심하고는 다시 원래 하던 일에 집중한다.

여인의 발걸음에는 소리가 없다. 적막한 아파트형 복도에 봉투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가방이 코트 자락에 스치는 소리만 들렸다. 움직임의 소리가 멎자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바로 이어서 정적을 메꾸었다. 집 주인이 손님 맞을 채비를 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문을 두드림과 거의 동시에 현관문 벨까지 누르고는 다시 가만히 손을 모으고 있었다.

- 누구... ...어, 연락하셨어요?
- 실례할게.

멋들어지게 까치집을 지은 남자는 집을 정돈할 생각도 못한 채 여인에게 제 공간을 내어주게 된다. 집이든 본인이든 손님을 맞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기에 민망한 기분을 숨길 수 없었다. 좁게 열린 문 틈 사이로 대뜸 여인의 손이 비집고 들어온 탓에 거절할 수도 없었다. 혹시나 자신이 놓친 연락이 있었나 싶어 재빨리 휴대폰을 확인하지만, 모든 알림은 마지막 기억 그대로 확인 처리가 되어 있었다.

드라이아이스조차 여름의 공기를 완벽하게 견뎌낼 수 없었다. 남자가 봉투를 열자 온갖 달콤한 향의 인공 감미료 냄새가 끼쳤다. 노련한 직원이 깔끔하게 담아준 것이 무색하게, 각각의 색이 녹이고 섞여 이상적인 핑크빛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녹은 아이스크림이 뚜껑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는 여인을 보며 남자는 유리컵과 스푼을 꺼냈다. 모양을 잡으려고 애를 쓸 때마다 체온 때문에 형태를 잃어가기만 했다. 가게에서 사먹는 것처럼 동그랗고 예쁘게 떠지는 스쿱이 있으면 좋으련만. 오늘의 수상한 아이스크림 모임은 그가 처음 독립하여 식기를 마련하던 시절에는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다.

식탁에 그릇을 올려놓자 여인이 그릇도 숟가락도 하나인 것에 의문을 표한다. 둘이라고 다 먹을 수 있는 사이즈는 아니었지만 남자는 잠자코 제 몫의 아이스크림까지 떠온다. 이미 양치를 해버렸다는 말은 구태여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 쌍의 컵과 스푼이 나란히 식탁에 놓인다. 녹은 아이스크림이 거품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릇 테두리서부터 아이스크림을 그러모아 한 스푼 떠먹은 남자는 문득 떠오르는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가게에 말차 유자맛 아이스크림은 없던가요? 새로 나온 건데, 그게 요즘 유행이래요.

- 그런 건 누구한테 들었어?
- 우리 반 아이들이...
- 별 걸 다 이야기하는구나.
- 아이들은 늘 그렇죠.
- 아이는 늘 그런가봐.

imnotsnowman님 커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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