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ling you, Darling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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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23. 8. 22. 13:22
작성자
Clockwork1overs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그를 알아보는 주민들에게 밝게 인사를 건네는, 그야말로 모두가 머릿속에 그릴 법한 경찰관이 된 권준호. 모든 것이 완벽하다. 이 지역에서 나가는 버스가 하루에 두 대 오고 간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반면 수상한 시골 의사 서명은. 그나마 있던 의사마저 노쇠하여 병원을 닫던 시기에 기적처럼 제 발로 마을까지 걸어 들어왔다. 낡은 병원과 의료기기를 보고도 투정 한마디 하지 않더니 나름대로 손을 봐서 그럴듯한 병원을 개원했다. 말수는 적지만 진료를 소홀히 하는 법이 없다. 노인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가만히 받아내는 덕에 칭찬 반 투정 반, 별점 3.0이라는 애매한 병원을 운영하는 젊은 의사 선생님.

그런 둘이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아주 가끔 있었는데, 바로 저녁 순찰 시간이었다. 치열하게 진료를 마친 명은이 몸을 수그려 유리문을 잠그고 있자면 종종 멀지 않은 곳에서 노란 불빛이 보였다. 수고하십니다. 항상 활기찬 톤으로 인사를 건네면 항상 그렇듯 말없이 묵례했다. 권 순경은 순찰이라는 명목으로 서 선생님을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이 동네는 가로등이 적잖아요. 불도 해가 지면 금방 꺼지고... 귀갓길의 동행을 먼저 제안한 것은 준호였다. 명은도 거부하지 않았다. 대화가 길거나 깊게 이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적어도 함께 걷는 십오 분 남짓의 산책이 어색하지 않게 느껴질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언젠가는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 순경님은 항상 성실하시네요.
- 그... 그러면 안 되나요?
- 칭찬이었는데.

이게 그녀의 화법이라는 것을 이해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에도 둘은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마주쳤고 그렇게 한 달에 열흘 정도 귀갓길을 함께 걸었다.

노인들은 동네에 몇 없는 젊은이들의 하트 시그널을 열성적으로 지지했다. 권 순경, 내가 자네 나이였을 땐 이미 애가 둘이었어. 우리 의사 선생님이 얼마나 참한지- 에이, 그 말수도 없는 양반이 뭐가 좋다고. 우리 손녀가 딱 청년 나이인데 말이야… 아하하…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권준호는 그 젊은 의사 선생님이 영 껄끄러웠다. 자신과 같은 이야기를 듣고 있을 테지만, 자신의 앞에서 그에 대해 농담조차 한마디 던지지를 않는 칼 같은 사람이었다. 어쩐지 준호는 명은을 만날 때마다 그녀가 무척 어려웠다. 

그런 둘의 대화가 가장 그럴싸하게 이어진 날을 준호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폭우가 계속되던 여름철, 산어귀에 사는 김 씨 노인이 사색이 되어 경찰서에 들이닥쳤다. 준호 청년, 이리 좀 와 봐. 새파란 경찰복에 진흙이 잔뜩 튀었다. 시퍼런 얼굴의 남자가 등산로도 아닌 길에서 비를 맞으며 누워 있었다. 이 마을에서 몇 년씩이나 근무한 준호도, 마당발 김 씨 노인도 모르는 인물이니 외지인이 틀림없었다. 타살일 가능성도 있어, 부검을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소문은 삽시간에 마을 안으로 퍼지지만 며칠째 비가 퍼붓는 날씨에 시골
파출소의 사건까지 기꺼이 도와주러 올 외부 인력은 없었다. 지원팀이 여기까지 오려면 반나절은 걸린다는 말에 초조한 기다림을 시작한지 두세 시간 즈음 지났을 무렵이었다. 경찰서에 손님이 한 명 찾아온다. 새하얀-사실 비를 잔뜩 맞아서 회색빛에 가까웠지만- 의사 가운을 입은 여인이 느린 동작으로 우산을 접어 우산통에 꽂는다.

- 가운이 다 젖으셨어요…
- 아. 벗어두고 오는 걸 까먹었네요. 괜찮습니다.

아랑곳하지 않고 테이블 위에 역시나 비에 젖은 짐을 올려놓더니 멋대로 개수대에서 손을 씻는다. 물소리와 빗소리 사이로 목소리가 들려온다. 쇼핑백에서 장갑 좀 꺼내주시겠어요. 끼는 것도 도와주시면 좋고요. 준호는 얼떨결에 시키는 대로 그녀를 돕는다. 마스크도… 준호가 비닐에 든 일회용 마스크의 포장을 뜯었다. 마스크를 씌우다 실수로 볼에 손가락이 스치자 화들짝 놀랐다. 죄송해요. 서운할 정도로 냉정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닙니다. 찬물 대신 찬 대답을 맞은 준호가 그제야 이 모든 준비가 끝나기 전에 꺼내놓았어야 할 질문을 떠올려 냈다. 그런데 서에는 어쩐 일로…? 명은이 또 간결하게 답한다. 시체가 있다면서요?

- 이제는 그냥 동네 의사니까요, 최대한 손대지 않고 볼 수 있는 것만 확인할게요. 
- ‘이제는’…?
- 시신을 좀 볼 수 있을까요?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시체를 보는 건 낯설었다… 정정한다. 노쇠한 시골 마을에서 자연사가 아닌 시체를 보는 것이 낯설었다. 경찰 학교에 다닐 때 사진으로나 봤던 것을 눈앞에 두려니 비위가 상하는 게 기분이 영 말이 아니었다. 비를 맞으며 간신히 옮기고 방수포로 덮어둔 시체까지 명은을 안내했다. 잠시 망설이던 준호가 이내 말한다. 비도 맞았고, 산에서 옮겨온 거라 보기가 좋지 않을 거예요. 힘드시면… 장갑의 상태를 점검하던 명은이 준호의 말을 뚝 끊는다. 부검의였어요. 개원하기 전까지는.

아. 아주 많은 답변을 뒤로 하고 준호는 그렇군요, 하고 짧은 대답을 내놓았다. 그 사이 명은은 망설임 없이 덮인 방수포를 걷어낸다. 방수포에 고여 있던 비가 후드득 떨어졌다. 비에 불어 터진 남자의 얼굴은 시간도 날도 아닌 분 단위로 흉측해지는 것만 같았다. 명은이 조심스레 시신 주변을 짚어가며 상태를 관찰한다. 

- 순경님, 차트 기록하는 법은 모르시겠죠? 
- 배운 적이 없어서… 
- 괜찮아요, 그러면 제가 말하는 걸 받아 적어 주세요. 

명은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 며칠이나 방치된 것 같은데 크게 눈에 띄는 외상은 없네, 혈흔도 없고… 비에 씻겨나갔을 수도 있지만. 옷이 멀쩡한 걸로 보아 몸통에 입은 상해는 없는 건가. 피부가 깨끗하고 저항한 흔적이 없으니 싸움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잠시만요. 머리에 상처가 있네요.
(이 대목에서 명은은 거리낄 것 없이 죽은 남자의 목을 들어 뒤통수를 손으로 더듬는다) 아하. 보통 이 정도 상처면 단순 실족보다는 타살에 가깝다고 봐야죠. 여기가 이렇게… (목을 도로 방수포에 내려놓자 진득한 액체가 묻은 손이 드러났으나, 안타깝게도 권 순경은 이미 눈을 질끈 감은 채 펜만 열심히 놀리고 있었다) 여름이라 부패가 빠르구나. 보내고 나면 여기에 향 좀 피워두세요. 벌레 잘 꼬이니까. …말이 좀 빨랐나? 미안해라.
- 아닙니다…
- 머리가 거꾸로 되어 있던가요? 산에서 발견했다면서요. 정확한 위치는? 처음에 발견하실 만한 분이라면, 등산길 초입에 산다고 하셨던 그 어르신이… 음, 윤 할아버님?
- 질문을 하나씩… 그리고 박 할머님이세요.
- 어머.

지금까지 마을 사람들의 이름과 주소를 알지 못하는 것도, 약하디약한 초짜 순경에게 사체에서 흘러나온 액체를 마주하게 만든 것에 대해서도 사과하지 않았으나 명은이 유일하게 사과를 건넨 것은 말하는 속도에 대한 것이었다. 하도 빠르게 말한 탓에 준호가 여념 없이 글씨를 쓰지만 필기가 끝난 것은 말이 맺어진지 한참이 더 지나고 나서였다. 준호가 펜 보드를 건네자 명은이 그것을 손을 쓰지 않고 받아 팔 사이에 끼웠다. 다시 원래대로 특유의 안개 낀 듯한 차분한 목소리로 돌아와 있었다.

- 벌써 구더기가 꽤 많이 보여요. 안치실도 없고 도구도 없고, 무엇보다 제게 권한이 없어서요.
-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이렇게까지 도와주시고…
- 저렇게 놔두다가는 까마귀나 들짐승이 내려와 살을 뜯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니까요. 살 한 쪽도 다 귀한 증거인데… … …농담이에요.
- 농담이…

지나치시네요… 

라고 말을 끝맺기도 전, 명은은 이미 파출소 안으로 들어가 장갑을 벗어 비닐에 담고 있었다. 따라 들어가자 준호의 선배 겸 아버지뻘 되는 파출소의 소장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혹시 몰라서 도와줄 만한 선배에게 연락했어요. 비가 사그라드는 대로 인계하러 올 거예요. 직접 보니 미심쩍은 사건이 맞아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바쁜 사람인데 헛걸음을… 아, 죽은 게 다행이라는 뜻은 아니고요. 아무튼, 다른 수사팀으로 넘기는 게 좋겠네요. 어르신들께서 워낙 외지인 오는 소식에 민감하시니 그쪽은 소장님이나 순경님께서 잘 처리해 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명은이 쓰고 있던 마스크와 머리끈마저 비닐에 넣고 밀봉했다. 부검의에서 평범한 의사 선생님으로 돌아오기까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움직임이라 그 시작과 끝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밀봉 지퍼가 비닐을 가르듯 준호의 생각도 자르고 지나간다. 그러면 이만 가볼게요. 오늘의 만남 중 가장 명랑해 보이는 말투로 통보한 명은이 여전히 축축한 의사 가운을 입은 채로 우산을 펼친다. 팡.

* 소재 제공: 카레고로케 님

로맨스는 없고 가로등 불빛만 있기는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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